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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일 [탈북민 정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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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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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8-31 14:50 조회 3,461 댓글 0
 
생 일 [탈북민 정착수기]

평소 우리는 믿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꿈이냐, 생시냐?”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탈북자로서 대한민국에 입국한 첫 순간부터 나에겐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하나원’에 입소하고 나서 처음 경험했던 ‘생일파티’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만을 위한다던 생일케익과 여러가지 난방과일들...나를 위한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케이크 위, 촛불에 불을 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선생님 한 말씀 하세요” 하나원에 자주 찾아오는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고 연단에 선 나는 엉뚱하게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군님(김정일)생일잔치 보다 더 요란한 것 같네요” 그리곤 두 눈을 슴벅이며 “북한에서 전, 한 번도 생일을 쇠 본 적이 없습니다”고 말을 이어갔다. 

정말 그랬다. 나는 1965년 4월 15일 생으로 김일성과 생일이 같았고 그런 연유로 해마다 진행되는 김일성 생일기념 정치행사에 동원되느라 제대로 된 생일을 한 번도 쇠 본적이 없었다. 

주변사람들이 그래도 네 생일엔 축포도 터지고, 때로 ‘장군님’ 배려로 사탕과과자도 선물로 내려오는 때가 있으니 ‘복 받은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늘 불만이었던 나의 심정을 저들이 알 리가 없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해 첫 생일을 쇠던 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부터 충성의 노래모임이다, 군의궐기모임이다 하면서 중대군인 모두가 들볶이고 있는데 분대를 이끌어야 할 분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밤새 무슨 일이 있어나 싶어 분대의 막내 전사인 나도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식사가 한 창인 식당 안으로 얼굴이 파랗게 얼어든 분대장이 숨 가쁘게 들이닥쳤다. 

아침부터 어디 갔었냐고, 오늘이 민족최대의 명절이고 정치행사가 꼬리를 무는 중요한 날인줄 알고는 있느냐고, 이 인간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소대장이 성토하고, 중대장이 성토하고, 그 다음엔 정치지도원까지 나서서 분대장을 몰아세웠다. 

이쯤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얼이 나가기가 일쑤인데 그날 분대장의 얼굴엔 웃음 비슷한 것이 감돌았고 지휘관들이 밖으로 나가자, 바지주머니에서 삶은 계란 두 개를 슬그머니 꺼내 나의 두 손에 꼭 쥐어주었다. 

아직도 온기가 보존되어 있던 삶은 달걀 두 개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체온마저 느껴지는가 싶어 눈 굽이 젖어들었고 그것이 어찌 보면 북에 있을 때 내가 ‘장군님 생일’과 무관하게 느꼈던 나만의 생일로 각인되어 있다. 

“철커덩!” 

2006년 4월 중국에서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었던 때의 일도 생각이 났다. 중국 연길시의 흥안구치소와 도문에 있는 변방수용소를 거쳐 북송된 나는 온성보위부를 거쳐 종성노동자구 장생리에 있는 국가보위부 함경북도 집결소라는 악마의 소굴에 수감되게 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막힌 그곳에는 국경연선지역의 보위부에서 이송되어 온 ‘특 범’들만 수용되어 있던 곳이다. 말하자면 한국기도(한국으로 가려고 했던 증거)가 확정이 되거나 중국에서 교회에 간적이 있는 탈북자들만 가둬 두는 곳이었다. 

나는 처음에 왜 이곳에 내가 이송되었는지 몰랐다. 체포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 한국에 도망치려 했다고 자백을 한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훗날에야 알 수가 있었다. 온몸에 덮쳐드는 공포와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마저 빼앗겨 43번이라는 번호로 불리는 사탄의 소굴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수납된 물건이었다. 울어도 소용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 곳에서 나는 매일처럼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악몽에서 어서 빨리 깨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혹독하고 무자비했고 마치 사람을 놀리기나 하는 듯이 수감된 지 두 달 만에 생일까지 맞게 되었다.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생일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장군님의 생신이기에 (통강냉이)밥 위에 삶은 콩 30알을 더 얹어 준다’는 계호원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장군님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일진대 왜 이렇게 까지 다른 세상을 살아야하는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고민해 보았다. 한편으론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했던 나에겐 생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존재라고 했던가...그날 오전 수용소 울타리 밑에서 호박 모를 옮기던 중, 너무 배가 고파 호박잎을 뜯어 먹다가 계호원에게 발각 되었다. 

손에 인분이 묻은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호박잎을 입에 쓸어 넣는 나를 본 계호원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멍멍이도 안 먹는 호박잎을 처먹고 있네. 맛있냐?” 

개보다 못한 인생! 후회하며 섰는데 “오늘이 생일이라며?” 하고 이야기를 건네며 계호원이 내 앞으로 다가 왔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조국에 와서 생일을 맞으니까 다행이다 싶지 않아?” 
“네”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계호원을 바라보며 그래도, 혹시 무슨 선심이라도 쓰려나 싶은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섰는데, “자, 이제 선생님이 생일 선물을 주겠다. 손 내밀어” 하면서 한발 더 가까이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무심결에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는 찰나, 계호원의 주먹과 군화발이 나의 얼굴이며 복부로 날아왔다. “이새끼 돌았구나. 야. 이새끼야 조국을 배신한 주제에 생일은 무슨 생일. 짐승에게도 생일이 있어?! 그래 너새끼 처먹은 만큼 주어 두드려 줄게. 너 지금 몇 살이야?” 

“한살, 두 살, 세 살...” 

먹은 나이가 고스란히 매가 되어 돌아오는 그 기막힌 처지에 빠져 있으면서도 살아보겠다고 몸을 옹송그리고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던 나. 그러는 나를 향해 ‘그래 무얼 잘못했는지 말해 볼래?’라고 씨근덕거리며 다시 또 다시 매질을 퍼 붓던 계호원... 

그날 밤, 함께 구속되어있던 고향 후배가 나의 손을 끌어당기더니 손바닥 위에 이런 글을 써 주었습니다. “형님,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내가 꼭, 우리고향 무산에서 생일상을 잘 차려줄게요!” 

 * * * 

이듬해 나는 다시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했고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처음 머무는 ‘하나원’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생일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느 한해도 소홀히 보낸 생일날이 없었던 것 같다. 2000년 4월부터 2006년 4월까지는 ‘PH재단’에서 일했던 관계로 그곳 관계자들이 차려주는 소중한 생일상을 받았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는 8년간 함께 일해 온 ‘통일 카도크’에서 선배며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맞고 있다. 

새해 2015년엔 독립된 카센터를 오픈할 예정이어서 주변사람들로부터 ‘성공한 탈북자’란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성공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현재의 생활에 충실, 또 충실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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