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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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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관리자
작성일 15-03-21 11:56 조회 3,205 댓글 0
 
고명화

나는 아직까지 글을 써본 경험은 없다. 북한에서 학교시절 글짓기를 할 때 펜만 쥐면 글줄이 꽉 막혀 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옥 같은 땅 북한을 탈출하여 천국과도 같은 대한민국에서의 생활과정은 내게 이글을 쓰게 만들었다.

밤새 도로를 누비던 차들의 불빛도 사라지고 우짖던 새들의 소리도 그친지 오랬고 소리 없이 내린 강한 서리로 하여 풀잎과 나뭇가지들은 허옇게 번들거린다.
두만강 연선 도로로 달리는 택시안에 우리식구가 타고 있었다. 꿈이냐?> 생시냐? 잘 믿어 지지 않아 줄곧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곤 했다.

아들과 딸과 함께 가슴 치는 물살에 휘말려 떠나갈 번했던 방금 전의 일, 아차 실수하면 죽는 것은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과 어깨 겪고 사생결단으로 강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분명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생각에 마음은 평온했지만 일은 이제부터였다.
10월도 다 가는 때라 강서리가 내려 젖은 옷이 달라붙은 몸은 추위로 덜덜 떨렸지만 단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 날이 새면 중국 변방대에 발각될 수 있다.
아이들은 내 얼굴만 쳐다본다.

나는 아무내색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진정 시켰다.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으면서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살길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약간의 몸 운동을 시키고 몇 가지 주의를 준 다음 도로에 나섰다.
재빨리 걸었다.
차들의 통행이 뜸할 땐 달리고 차가오면 도로 옆에 몸을 숨기고 그렇게 반복하며 숨 가삐 달렸다.

그런데 도로에 나타나는 차가 너무 많았다. 그만큼 숨바꼭질을 하는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갑자기 많이 달리니 다리가 뻣뻣해지고 아이들도 점점 힘을 잃는다.
신발 코가 터져 발가락이 나와 나뭇가지에 찔려도 그 아픔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불 밝은 건물. 도로 옆에 몸을 숨기고 살펴보니 국경 경비대 건물 같았다.
오던 길을 되돌아 또 얼마간 달려 도로 옆에 몸을 숨겼다.
시간이 많이 흐르니 차들의 통행이 뜸해지기 시작하였다.
"에라, 살든지 죽던지 운명에 맡긴다."

독한 마음을 먹은 나는 도로에 나서서 달리는 차마다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모두 찬바람만 일구며 그대로 지나쳤다.
야밤삼경에 웬 여자가 차를 세우니 불안감에 안 세우나 하는 생각에 딸은 숨겨놓고 아들 손을 잡고 달려오는 두 대의 택시 앞에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한대는 통과하고 두 번째 택시도 통과 하는가 싶었는데 다시 후진하여 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기쁨보다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경찰이 내리는가? 아니면 북한에서 중국으로 온 간부가?”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다가가니 택시기사와 손님 한명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한족인 듯 했다 "돈 내라"하고 발음 부족한 조선말을 겨우 한다. 미리 준비해 가지고 있던 중국 인민폐 100원을 주었더니 뭐라 말하는데 어디로 가겠는가고 묻는 것 같았다.

우선 가고 보자는 식으로 손짓을 홰홰 했다.
떠나면서 외웠던 전화번호에 전화해볼까 하여 핸드폰을 빌려 달라고 하려다가 조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범의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참 달리던 차는 불빛이 대낮같은 거리에서 멈추었다.
창밖을 보니 "훈춘 조선족 여관"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택시기사는 내려서 전화도 하고 자고 가라고 손시늉했다.
우리와 그냥 함께 가면 자기는 죽는다는 시늉도 한다.

가만 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펜과 종이를 달라고 하여 전화번호를 적어주니 자기 핸드폰으로 얼른 연결해 주었다. 그리하여 다시 연길 쪽으로 방향을 돌려 우리가 목적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차창 밖을 내다보며 꿈인지 생시인지 잘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감수하며 "하늘이 도왔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생사기로에서 헤매던 사람들을 품어내고도 아는지 모르는지 내색 없이 유유히 흘러만 가는 두만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새벽닭이 우는 조용한 농촌 마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이들과 함께 연길에 있는 자택 교회에 머물면서 하느님을 우리의 구주로 모시고 마음의 평온을 찾고 새 삶을 얻었다.
폐쇄된 북한 땅에서 깊은 밤이면 남편과 가만히 라디오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본 나로서는 수많은 군중들이 공개적으로 십자가 앞에서 기도 행사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나 처음으로 떳떳하게 영생의 삶을 주시는 우리의 주님을 알게 되었고 믿음도 얻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인간만을 숭배하라고 내리 먹이며 이르는 곳마다 사적 관들과 연구실들을 지어놓고 우상화의 사상을 주입하는 강 건너 지옥의 땅, 내 조국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서도 가슴 저리게 생각했다.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중국-캄보디아 행을 하면서 줄곧 차창 밖을 내다보며 거리로 오가는 사람 모두를 북한 땅의 사람들과 자꾸만 대비해 보게 되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금방 빨아 입고 나간 옷도 바로 꺼멓게 되는 저 북한 땅, 지금 이 시각도 거리에서 한 끼 끼니를 위해 무언가 들고 팔리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얼굴, 그런 사람들을 마구 압박하여 불법매매라며 빼앗으려 하고 또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우성 소리가 그칠 새 없는 거리, 자기 노력보다 남의 노동력을 강제로 수탈하는 자가 더 번성하고 장사길 떠나며 화물자동차라도 잡아볼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리가 자꾸 대조되어 안겨들었다.

어쩌다 한대씩 오는 차에 서로 오르려고 다투며 돈 주고 타는 것도 운전기사의 박대를 받으며 타야 하는 너무나도 기막힌 현실이다. 마치도 저 북한 땅에 대한 표상은 거세찬 바람에 가로수가 휘청거리고 낙엽이 진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마른 사람들이 날려 갈까봐 겨우 자기를 지탱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늘높이 날아오른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불야성의 도시들을 보며 어둠속에 묻힌 북한 땅, 주민들의 한숨이 하늘 끝에 닿는 북한을 또다시 생각한다.

돈 있는 사람들은 공장과 연구실로 들어가는 전기선을 따내어 불을 보고 그다음 힘 있는 사람들은 배터리를 공장에 들고 가서 충전하여 불을 보고 등잔기름마저 돈 주고 살 힘이 없는 사람들은 해가지고 뜨는 것에 맞추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오늘날 북한 땅의 현실이다.

그처럼 바라고 바라던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어 매일 매일 다양한 메뉴의 음식상을 마주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삼삼 떠올라 저절로 목이 메었다.

고난의 2007년. 앞가슴에 훈장을 더는 자리가 없어 달지 못하셨던 외조부모님을 땅에 묻고 너무도 기가 막혀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술 한 잔도 제대로 부을 수 없던 너무도 째진 가난이 야속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첫 공산당원이였던 외할아버지와 할머님은 죽는 순간까지 당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셨다.
조선로동당에서 "비사회주의 현상" 이라고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셨다. 그처럼 당만을 믿고 살아오셨건만 운명직전엔 수수 겨로 쓴 죽도 변변히 못 드시고 땅에 묻히셨다.

오늘도 행여나 국가에서 배급을 주려나 기대하며 이것이 운명인가보다 하고 순종했던 사람들은 무두 다 다시 오지 못할 그 길을 갔다.

그러한 참상을 목격하면서 나는 당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해야 산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알게 되었다.
시아버님과 함께 온 하루 쑥을 뜯어 일곱 식구 밀가루 두 컵 섞어 떡을 하면 하루 먹기 어려웠다. 얼마나 그 쑥떡에 질렸던지 그 이 후로는 한 번도 쑥떡을 해먹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맛있게 한 쑥떡을 보면 그때의 생각이 나며 그토록 그리시던 이 좋은 세상에 오시지 못하시고 땅에 묻히신 시부모님생각에 마음이 아파온다.

우리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군대들을 보면 지금도 북한 땅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병사들을 생각한다.
청진-온성 행 열차에 아들을 태워 보내고 돌아서려는데 나에게로 다가오는 한 병사? "돈200원만 있으면 좀 주세요." 너무도 여위여 군복은 남의 것을 빌려 입은 것 같고 몸은 뼈에 가죽을 씌운 것 같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500원이 있었다.

그것을 주니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고는 빵을 사가지고 정신없이 먹는 것이었다.
만일 너의 부모가 네 그러는 모습을 본다면? 나는 그 병사를 불러 고향은 어딘가, 부모님은 계신가고 물었다. 부모님은 평북도 어느 농장원이고 자기는 장남이라 했다. "너를 군대에 내보내고 장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님을 생각해 봐라 살겠으면 강심을 먹고 훔쳐 먹고서라도 살아라. 그런 악이 없으면 넌 결핵 결려 죽는다."고 말하니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살아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아이들이 간식을 받아가지고 들어오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다.
2008년 9월 청진시의 어느 과수원의 수확을 끝낸 배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너무도 허기져 일어나지 못하던 한 할머니 생각이 났다.
며칠째 배를 삶아 끼니를 에우고 그것마저 떨어져 끝내 돌아가신 그 할머니, 그 역시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의 시어머니었다. 눈물로 얼룩진 많고 많은 사연들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으랴.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과 거리의 모든 것은 함부로 밟을 수 없다. 무심히 스칠 수 없는 알뜰한 손길과 정성스런 마음이 그대로 스며있는 대한민국의 도시와 마을은 북한에서는 꿈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이상의 도시다. 장애인들을 위하여 무료봉사에 나서고 탈북자들을 위하여 봉사의 길에 나서신 고마운 분들.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금식기도와 중보기도 하시는 분들, 자기만이 살기에 급급하여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이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나도 상상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의식주 걱정 없이 자기 능력껏 벌어 살 수 있는 이 땅이 천국이 아니고 어디가 천국이랴!
지금 내가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지내는 하루하루의 귀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오늘도 억울하게 수용소에 잡혀가고 있을 사람들, 다음날 식량을 마련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뛰고 또 뛰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이 같은 밝은 빛이 비치어 다 같이 천국에서 즐기며 살 그날은 가까워 오고 있다.
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우리 탈북민들이 이 땅에 제대로 뿌리박고 무성한 아치를 쳐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 생각한다.

날은 밝기전이 가장 어두우며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새날이 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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