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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체제, 무너진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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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관리자
작성일 15-02-10 23:30 조회 3,063 댓글 0
 
북한 체제에 대해 말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인민을 굶기는 사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사회,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먹으며 전 주민이 노예처럼 강요된 삶을 사는 불합리한 사회로 대뜸 생각하게 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자유 분망한 민주사회와는 달리 단순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사회에서 복합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발현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건이 그러해도 무언가 남들보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누구든지 들으면 얼굴 찡그리는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현상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곳도 바로 북한이다.


오늘 내가 쓰고 싶은 가정생활 일상에서 일어나는 부덕한 처사에 관한 이야기도 오로지 북한 같은 폐쇄 사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 말하고 싶다.


원래 가정이라 함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사회의 기층 조직으로서 그 가정이 건전하고 재원이 뚜렷하여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은 물론 교육과 삶의 목표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체도 빛을 발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어떤 사회에서도 가정이 중요함을 무시할 수 없고 가정의 이익을 떠나서 어떤 사명에 의한 이익을 추구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가정보다 더 중시해야 될 어떤 조직체가 있고 가정까지 희생하여 그 조직체를 발전 풍부해 지도록 모든 봉사가 이루어지게 만든다면 단일적으로는 뭔가 잘될 것 같지만 그 후과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다 그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가정을 토대로 평생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집단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분명한 편향이다.


나는 나의 가정적 삶을 통해 체제위주의 북한사회에서 어떻게 가정이 무너졌는가를 나의 체험을 증거로 밝히려 한다.


1998년 나는 23살의 나이로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국가 정무원의 한 연구 기관에서 연구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키도 훤칠했고 골격이 뚜렷해 여자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큼 잘 생긴 남자였다.


결혼 초기 우리부부는 남달리 사랑이 깊었고 상호간 깊은 이해 속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평양 광복거리의 과학자 아파트에서 32평의 멋진 나의 집에서 오랜만에 단출한 연회가 열렸다. 남편이 일하는 연구 기관의 수장이며 남편의 직접적인 상관인 나이 지숙한 간부를 모시고 진행된 연회였는데 손님은 따로 없었다.


외국산 위스키를 구입해 권커니 작커니 몇 순배 돌았다. 남편과 그 간부는 평소 서로 절친한 사이 같았다.


그 간부는 나까지 술상에 끌어 들여 싫다는 내게 그냥 술을 권했다. 남편 앞이어서 그이의 눈치만 살피는데 그도 윗분이 주시는데 어서 마시라고 했다. 북한에서 여성이 술을 마시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나는 많이 주저했지만 하도 권하기에 안 마실 수도 없었다.


난생 처음 마시는 술이라 첫 모금에 벌써 온 몸에 주기가 올랐다. 그 사람이 권했고 남편도 권했다.


그렇게 몇 잔 억지로 받아 마시자 조금 후 내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방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좀 눕고 싶었지만 장소가 허락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의지로 참고 견뎠다.


그 간부가 또 한 잔 권했다. 그것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별로 기억도 안 난다. 나는 결국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진 것 같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깊은 한밤중이었다. 몸에 맞혀오는 이상한 예감에 정신이 맑아졌다. 눈을 뜬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완전 발가숭이였다. 나뿐이 아니다. 내 몸을 꽉 부둥켜안고 한 마리의 곰처럼 씩씩거리는 남자는 뜻밖에도 내 남편이 아닌 그 간부라는 사내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밀어버리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듯 마음대로 내 몸을 주무르며 욕정을 풀고 난 그 간부가 히죽 웃으며 내 볼을 슬쩍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그가 만족한 듯 웃으며 나간 후에도 나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냥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깊은 회한의 눈물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세상을 살고 싶은 생각이 모두 없어진다. 그것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가장 치욕적인 대접을 받았을 때의 충격 그대로였다.


당시에 나는 나의 판단력으로 남편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예리한 비수로 내 몸을 사정없이 찌르는 행위였다.


그 간부가 돌아 간 후 나는 남편을 찾았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집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나타났다. 히죽히죽 웃으며 들어 선 그는 이내 출근해야 한다면서 밥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가 살피고 나온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나에게로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가 그처럼 추악해 보이기는 결혼 후 처음이었다. 무슨 오물이 다가오는 듯 몸서리가 처졌다. 그가 말했다.


“지금이 몇 신데, 밥도 안 하고? 당신 무슨 일 있었어?”
“??”
“부장 동진 언제 가셨어?”
“모르겠어요, 난 술에 떡이 되어 지금껏 자고 있었어요.”
“아무 일 없었어?”
“무슨 일?”
“아니, 근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그게 40도짜리 술인데 그렇게 물 마시 듯 참.”
“당신이 마시랬잖아요?”
“마시란다고 마셔? 그것 참.”
“근데 당신은 왜 밤중에 집을 나갔어요?”
“어, 부서에 급한 일이 제기돼서, 좌우간 수고했어.”


무얼 염두에 두고 수고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아리송했다. 뭐가 뭔지 도무지 판단을 못하겠다.


그 날 어떻게 하루해가 가고 어떻게 날이 밝았는지 나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허공에 붕 뜬 것처럼 허탈에 빠져 이틀을 보냈다.


멋진 집과 폭신한 이부자리들, 없는 것 없이 차려놓은 값진 가전제품들로 가득한 이 집이 그처럼 낯설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저녁이면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남편도 퇴근 무렵이면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제발 들어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사랑도 의리도 정도 모두 구중천에 날아간 것만 같은 썰렁한 집안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게 갇힌 새처럼 오돌 오돌 떨며 깊은 고뇌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정말 남편은 이 일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남편의 의도적인 계획이 없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심적 고통에서 헤매고만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밖에 나섰다. 남편이 일하는 부서에는 나의 대학동창이 있었다.


그를 불러 어느 식당에서 조용히 마주 앉았다. 그날 밤의 날짜를 대면서 직장에 무슨 급한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친구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 기관에서 급히 밤중에 달려 나와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물어 본 내가 어리석었다.


독한 술을 마셔버린 사람이 밤중에 직장에 나가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의 진위를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다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역기가 치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 온 그날 밤, 홀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뒤척거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었다. 나는 남편이 온 줄로만 알았다. 문을 열자 뜻 밖에도 그 간부가 웃으며 들어섰다.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서는 나를 향해 그 사람도 한 발 두발 웃으며 다가왔다.


“왜 이러세요?”
“당신이야말로 왜 이러는 거요? 내가 뭐 어쨌게”
“예에??”


이렇게 철면피한 자도 있는가?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아닌 밤중 제잡담 들어서고도 왜 이러는 가고?


“그렇게 새침 떨지 말고 이리 와 앉으라구,”


그 사람이 스스럼없이 객실의 소파에 않았다. 그리고는 마치 제 집인 듯 윗저고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하는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처음도 아닌데 곁에 와 앉지?”


그가 웃는 그 모습이 내게는 참으로 역하게 보였다.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 남편 말이야 오늘 과장으로 승급했어, 그를 승급시킨 건 뭐 능력이라기보다는 바로 당신이 미모 때문이겠지, 난 말이야, 앞으로 당신 남편에게 내 자리까지 물려 줄 생각이야, 당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이건 물론 긴밀히 거래된 약속이기도 하고, 나 정말 당신이 좋거든”


아주 거리낌 없이 뱉어내는 그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네에?? 저의 남편과 약속을 했다고요?”
“그래, 아,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감히 당신과 몸을 섞을라고? 원 이렇게 눈치가 없다구야,”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나는 정색했다.


“한 가지 물읍시다. 저의 남편은 출세를 위해서 결국 아내를 팔았다는 소린데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뭘 그리 심중해서 그러나, 판게아니라 우린 서로 협력을 한 거지, 쉽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을 괜히 복잡하게 일을 만들어 앞일을 망칠 필요가 어데 있냐는 거지”


계속하여 그 사람은 많은 말을 했다. 홧홧 달아오르는 모멸을 참으며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금 몸담은 이 사회의 모순을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지위에 대하여 역설했다.


그가 어떤 설교를 내게 했는지를 내가 다음 날 남편과 나눈 이야기까지 결부하여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대체 무슨 거래를 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무 꺼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밀리니까,”
“뭐라고요?”
“여기 평양에서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각해 봐, 몸과 마음 다 바쳐 어버이 장군님을 길이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기에 왜 장군님 소리가 나오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의 원리가 그런 것 아니겠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가정이 아닌 국가야,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위를 빼놓고 개인의 안식처인 가정은 2차적 차원이라는 소리지. 만약 가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수장의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면 권력 제일주의인 우리 체제에서 그는 앙심을 품고 나를 평양에서 추방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런다고 어디 가서 하소할 데도 없지 않은가? 이 나라의 체제는 법도 양심도 모두 2차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1차가 바로 권력이야.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진정한 사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개인적 면에서 당하는 모멸과 감정의 파괴를 지혜롭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이겨 나가며 이용하는 자만이 당당한 권력의 주인이 된다는 거야. 이걸 이해 못하면 당신은 나를 떠나도 돼, 나는 애잔한 가정적 양심과 예로부터 묶어져 내려오는 어떤 윤리에 자신을 귀속시키며 따분한 도덕을 부르짖는 사람으로부터 단호히 탈퇴한 적이 벌써 오래됐어, 나와 평생을 같이 하려면 당신도 그 따분한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해, 생각을 바꾸면 바라던 바를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야, 난 지금의 위치에서 곤두박질 쳐 지방까지 쫓겨 내려가 어느 농촌 구석에서 땅이나 파먹으며 당신과의 사랑만을 부르짖으며 살기는 싫어.”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밤중이지만 밖을 나왔다. 그리고는 정처 없이 걸었다. 야심한 밤이어서 거리는 무덤 속처럼 조용했지만 내 심장은 당장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나를 덮친다. 내가 걸어가는 옥류교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며 대동강의 찬 물속에 사정없이 나를 집어넣는다.
그 때 28년이란 세월을 살면서 세상을 그렇게 저주해 본 적은 없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 평생을 함께 하며 한생을 보람 있게 살리라 남몰래 미소 지으며 행복에 젖었던 나는 영영 내 곁에서 사라졌다.


뭐? 봉건적인 따분한 세계에서 벗어나라고? 그렇게 벗어나는 길이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에 입 맞추며 사는 길임을 역설하던 그 더러운 자의 더러운 궤변이 결국 수십 년 잠자던 나를 내게 돌아오게끔 깨웠던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그처럼 증오했던 그 사회에서 내가 나를 찾았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회는 진정 일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권력에 바칠 줄 아는 자만이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이상, 그리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던 나이기에 더 이상 삶을 이어갈 공간이 그곳에는 없었다.


그 후 그와 결별하고 남몰래 눈물지으며 결국 나는 두만강을 넘었다.


나에게서 28년은 없다.


나는 지금 한강의 맑은 물에 어지러워진 내 영혼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는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영혼을 팔아 ‘구세주’를 섬기며 구차한 삶을 영위해 가도록 만든 저 북쪽에서의 나의 28년은 그렇게 한강의 맑은 물에 깨끗이 씻겨 나갔다.


2015년 1월 이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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