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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노인 의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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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마당이 인민들을 먹여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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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관리자
작성일 14-09-16 15:14 조회 2,982 댓글 0
 
의사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북조선의 의료시설은 의료기구의 노후화, 의약품의 태부족, 그리고 의료종사자들의 약품 횡령으로 의료기관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실정에 있다. 1980년대 이후 종합병원은 자기들이 사용할 약을 생산하기 위해 부설의약품 공장을 만들기도 했으나 기술적 문제로 부작용이 생겨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환자 스스로 자기가 쓸 약을 사가지고 와야 치료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박00 : 내가 근무하던 병원은 일반인들 대상으로 병의 중경(重輕)이나 진료기간에 상관없이 무상으로 치료해주던 곳이다. 북조선의 의료실태는 1970년~80년대 완전한 무상치료가 실시되고 의약품이나 시설이 좋아 의사도 일하기가 괜찮았다. 당시 제공되던 약품도 제약공장에서 생산하는 정규용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기 시작했고, 각 종합병원마다 자체적으로 필요한 의약품(링겔, 항생제 등)을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당연히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부작용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마저 부족해서, 말은 무상치료이지만 무상의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환자가 스스로 의약품을 사와야 했다. 곡선을 그리자면 북한의 의료, 보건부문은 196년대 시작해서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수직 상승했다가, 지금은 50~60년대 수준으로 완전히 추락했다. 거꾸로 가고 있다.

그대신 장마당에 가면 어디서 나오는지 의료도서며 약품이 차고 넘친다. 중국제도 있고 심지어 남조선 의약품도 종종 나오고 있다.  입원환자, 수술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시장에 가서 약을 구입해 오는 형편이다.

이00 : 사회주의국가라고 하여 무상의료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퇴원할 때까지 들어가는 각종 약, 주사, 수술용 약품, 솜, 식사 등을 모두 본인이 내야 한다. 병원에서 대주는 것은 의사들, 병실 빌려 주는 것 외에는 하나도 없다. 식량난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육-교사도 결국 장마당에서 식량을 구입해야] 

인민학교는 그런대로 운영되고 있으나 중, 고등학교는 대학입학이 확실하지 않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교육기자재의 공급이 거의 끊어진데다가 학교시설 보수도 학교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학생들의 교과서는 대물림으로 해결하고 있다. 교원들이 식량부족에 허덕이고 있으며, 교원들(특히 여교사)도 저녁에는 개인장사에 나서야 살아갈 수 있다. 일부 대학에 대해서도 「실리(實利)」를 강조하고 있어 학교 스스로 돈벌이 사업을 조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교원들이란 본래 장사하는 자질이 부족한데다가 장사 자체를 경멸하는 사고방식이 있어 교원들의 경제생활은 좋지 않은 편이며,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00 : 식량난이 심할 때에는 교원들 중에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있던 대학에서도 박사 급 한 명을 포함해 5명이 죽었다. 대부분의 교원들은 선비인데 장사까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안 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장사를 나간다. 그런데 장사라는 게 기질이 있어야 하는데 교원은 고지식하고 주어진 범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부인들은 다르다.

대학에는 여자 교원이 극소수이지만 중학교에서는 많은 편이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나가서 국수라도 팔지만, 큰 장사는 못한다. 내가 있던 대학의 경우 기숙사에 250~300명이 있었는데, 식량난 이후의 대학운영은 대부분 외부에서 지원되는 쌀에 의존했다. 그런데 그것이 끊길 때도 많은데, 그럴 경우에는 학기 중이라도 어쩔 수 없이 방학을 해서 집으로 보낸다. 그나마도 당학교는 조금이라도 주기 때문에 일반대학이나 전문학교 보다 나은 편이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교원이나 학생들에게 금요일에는 금요노동, 일요일에는 일요노동을 하게 한다. 오늘 한 학급 나가고 다음 번에는 다음 학급이 나가는 방식으로 하다가, 농번기에는 전부 동원된다. 식량난 이전에도 그랬지만, 식량난 이후에 더욱 심하게 동원했다. 중등학교 경우 학생과 선생 반수가 휴직하고 국수를 팔거나 장사하러 다닌다.
이00 : 교원이 장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공급한다. 당일꾼, 행정일꾼, 공무원들은 많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뇌물을 받는다. 인텔리들이 살기는 힘들다. 장사하는 사람이 잘 산다.

김00 : 1990년대 후반에도 학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개인 부담이 늘었다. 예를 들어 3학년이 교실을 꾸린다면, 명당 가정에서 얼마씩 내서 꾸리자고 한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국가가 못 해주니까 가정에서 무조건 내라는 거다. 장마당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장마당 활성화와 더불어 개인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전에도 대학을 보낼 때, 뇌물(돈)만 주면 대학입학 시험문제의 답을 시험치기 전에 다 알려주었다. 실력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전문학교 정도는 돈을 들여서 가지는 않고, 대학 정도는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해 주기 때문에 돈을 들어가더라도 입학하려고 한다.

이00 : 교육이 질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우리도 죽을 먹으면서까지 아이들을 학교 6학년까지 다 보냈다. 그러나 여기 와서 보니 중학교를 3년 더 보내야만 이 사회에 적응할 것 같다. 거기서는 우리아이도 실력이 높은 편이었는데, 지금 보면 여기 한국하고 차이가 많이 난다.

탈북한 30세 이전의 아이들 중에 학교를 제대로 다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학교 다녔다면 명분뿐이지, 부모들과 농사나 짓고 했지 사실 학교에 어쩌다 나간다 해도 교원들마저 먹을 것이 없어서 출근을 못 하니까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끼리 잡담하다 돌아온다. 학교를 복구하자고 하면서 대대적으로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다 보니 개인 부담이 더 많아졌다.

세계적 수준을 맞추려니 학교에 컴퓨터 등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국가의 지원이 없으니까, 학교장이 자체로 조직을 해야 된다. 가을철에 닷새씩 이삭줍기, 옥수수 5키로 확보하라고 하니까 그간에 아이들 진도를 못 맞춘다. 진도를 맞추려니까 대충대충 넘어가지도 하고, 여러 면에서 질이 많이 떨어진다. 아직도 학교관리는 철저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점검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배를 곯아도 유리창에 먼지도 닦고, 바닥도 번질번질하게 유지해야 한다. 아직까지 규율이 세게 적용되는 곳이 학교와 관리소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생각 못했는데, 2000년 이후부터는 졸업할 때 교원들에게 현금은 못 주지만 옷을 사준다거나 텔레비전을 사주기도 한다. 자식들을 위해서 수고했다는 의미로 선생들에게 선물한다. 5년 정도 된 것 같다. 우리 산골학교는 내의 1~2벌 정도를 사줬는데, 회령시 경우는 옷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녹음기까지도 사준다고 한다. 모두 장마당 덕분이다.

장00 : 경제난 이후 학교에서 내라는 게 너무 많다 보니, 학부모들은 실제 필요한 교육비만 내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색 할 때 도색 값, 유리 값, 횟가루 값, 선생님 결혼부조금 등 종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예전에도 학부모가 조금은 부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소나마 공급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일체 학부모와 학생에게 의존을 한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부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교 교장이나 간부들이 다 뜯어먹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학교 운영에 관한 내용에는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책걸상까지 모두 개인 부담이다. 도면을 줄 테니 2명이 책걸상 1조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못 만들어 오면 올 때까지 수업을 못 듣는다.

1990년 후반기 「국방위원회 명령 0022호 관철사업」이라는 게 있었다. 핵심 내용을 보면 첫째는 김정일을 모시는 사업, 둘째는 전쟁준비 사업이었다. 당 활동과 관련해서는 핵심군중, 기본군중, 교양군중의 세 부류로 구분하였다. 핵심군중은 토대가 좋은 사람, 기본군중은 일반적인 토대의 사람, 교양군중은 토대가 불량하거나 월남 가족이 있다거나 그 이상으로 나쁜 자이다.

이 기준에 따라 당의 사회통제 사업도 진행된다. 시장의 활성화가 이루어 지면서 주민통제가 다소 느슨해졌다고 볼 수 있으나 반체제 경향, 특히 ‘지도자’에 대한 불경(不敬)행동이나 적대적 언행은 더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법관(보위부원, 안전부원 등)들이 월권행위와 뇌물수수를 예사로 하고 있으니 사회질서 위반사범의 증가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00 : 예전 김일성 시대의 법 기관 사람들하고는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다르다. 김정일 이후에 법 기관에서 일하는 젊은 패들은 당을 지키겠다거나 충성심보다는 내 권력을 이용해 잘 먹고 잘살겠다라는 생각밖에 없다. 「돈이 권력을 낳고 권력이 돈을 낳고 돈이 돈을 낳는다」라는 말이 돌기까지 한다.

채00 : 생활총화는 열흘에 한 번씩 한다. 30명 중 20명 정도가 모여 형식적으로 한다. 1인당 5분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참가 안 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비판을 해야 한다. 월에 한 번씩 군당(상급 당 조직)에 보고한다. 나 같은 노동자들의 경우는 생활총화 안 해도 크게 말 안 한다. 하지만 1달에 3번 이상 빠지면 직장에서 내쫓긴다. 내 보내면 다른 데 가서 일해야 된다.

노동자의 유리한 점은 여는 직장처럼 통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이 빠질 경우에만 통제를 받는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통제가 심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모두 공장․기업소에 출근해야 한다. 북한에서 남자들은 일거리가 있거나 없거나 공장에 나가야 된다. 일감이 없어 월급을 못 받아도 나가야 된다. 북한에는 실업자가 없다. 자기 마음에 없는 회사라도 국가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된다. 안 가면 법에 의뢰해서 강제로 시킨다.

박00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엄청 굶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조금 허용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4대 증명서- 당위원회의 허락이 필요한 노력 판견자, 당원들에게 발급하는 당원 이동증, 인민보안성세서 발급하는 거주․퇴거 이동증, 군 경력이 기록된 군사 이동증-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발급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이밖에 인민보안성에서 발급하는 통행증이라고 있는데, 이것이 없으면 차표를 구입할 수 없다. 오히려 국경, 연선지역, 평양시, 비무장지대 근처 등으로의 이동에 대해서는 철저한 승인번호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 이전보다 이동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기관, 공장․기업소에서 하는 조직생활 이외에 거주지에서 하는 인민반 생활이 있다. 1개 동에 30~40개의 인민반이 있고, 1개의 인민반은 20~30세대로 구성된다.

그 생활도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다. 생활방식,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통제사업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일반주민들의 생활통제 및 사상교육을 강화했다. 이를 테면 1970년대 만들어진 「정규화 생활」안을 지금까지 지켜가고 있다. 주에 한 차례씩 하는 주생활총화, 강연회, 정치학습회, 일요 영화문헌 학습 등 정치행사와 관련된 생활을 정규화 생활이라 한다. 노동신문 낭독하는 것 등은 여전히 똑같이 한다.

김00 : 거주이전, 여행의 자유에 대한 제재가 최대로 강화되었다. 탈북자가 증가하면서「국경연선지대 증명서」는 부모사망 또는 본인 결혼 외에는 국경지대를 통과 할 수 있는 증명서를 떼어주지 않는다. 떼어주더라도 보위부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목적지를 해당 보위부에 통보하고 일정을 사전에 전달하는 연락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일반증명서의 경우 뇌물만 제공하면 발급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절반 정도는 장사꾼들이 발급받는다. 일상작인 주민생활 통제는 보다 강화되었다. 2003년과 2006년 당의 방침으로 월경 또는 불순한 행위를 기도하는 적대세력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 당, 행정조직별 또는 사법검찰을 중심으로 하여 보위부, 안전부 계통으로 「교양 군중과의 사업을 잘 할 것에 대하여」라는 방침이 내려왔다.

이후 감시와 통제체계를 훨씬 더 강화하고 당, 행정, 안전부, 보위부등 4개 계통으로 중앙까지 통보하도록 하는 보고체계도 세워놓았다. 탈북 의심자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까지 강화되고 있다.

이00 : 「고난의 행군」때에는 국가가 정치학습이나 통제를 강화하고 사형과 공개처형도 많이 했다. 지금은 통제가 약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풀어주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법적으로 해외의 라디오로 듣거나 비디오를 본다든지 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라고 공문이 내려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낸다. 최근에는 CD나 비디오로 한국 드라마 보는 것이 만연되어 있다.
하지만 단속을 집행해야 될 담당 보위부 요원들이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당장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느슨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에는 여전히 통행증이나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기차 안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한 사람이 보통 배낭에 50키로~70㎏을 메고 다니는데, 열차 보안원의 단속에 걸리더라도 ‘날 죽여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공무원도 사람이고, 그 많은 사람 다 잡아갈 수 없으니까 그냥 눈감아 주기도 하고 뇌물도 먹기도 한다. 그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주민들에 대한 통제제도는 바뀐 것이 없다.

과거에는 국경지역을 갈 때 증명서가 없이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에는 여전히 통행증이나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증명서 없이도 다른 지역, 심지어 국경지역까지도 갈 수 있다. 가는 도중에 단속되면 뇌물을 주면 된다. 보안원이 먼저 요구하기도 하다. 외부에서 볼 때는 북한사회가 대단히 엄격하고 규율 있는 사회로 보이겠지만,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혼란 무법천지다.

이00 : 북한에서 통제를 하지만 중국영화나 한국영화도 많이 본다. 중국에 건너가서 직접 듣는 소리도 있고, 사람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들은 소리를 전해 듣다 보니 아는 것도 많아졌다. 7.1조치 이후에도 정치교육은 계속 받았다. 그런데 정치교육에 참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탈북하기 전에 중대 초급단체비서였다.

원래 1일주에 3번 모인다. 생활총화를 해도 마지못해 참가해서 틀에 박힌 생활총화를 한다. 1990년도 이전에는 단체들의 규율이 셌다. 지금도 규율이 세다지만, 참가 안 하는 사람에게 크게 비판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선동자료, 학습회의 등을 하지만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옆에 사람하고 말은 안 하지만 빨리 끝났으면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생활총화도 간략하게 하고, 보고도 간단하게 30분이면 다 끝난다.

이00 : 탄광은 다른 기업소에 비하면 규율이 세다. 그러니까 통제도 세다. 갱도면 갱도 통제, 기업소면 기업소 통제, 연합대면 연합대 통제 등 2중 3중으로 통제를 한다. 거기서 자꾸 빠지면 2~3번씩 데려다가 교육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노동단련대로 보낸다. 탄광은 한두 명으로는 일을 못한다. 무거운 물건을 다루기 때문에 통제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최소인원은 보장해줘야 한다. 정 굶어 죽지 않는 한 나와서 할 수밖에 없다.

장00 : 7.1조치 이후 장사를 개방하면서 통제, 규제는 더 세졌다. 아무래도 법 단속기관이 늘어나고 많아졌다. 단속에 거리면 뭘 고여야(뇌물)를 바친다. 모든 단가가 올라가니까 벌금의 액수도 커졌다. 당원들인 경우에는 거의 다 생활총화에 참여하다. 그러나 직맹원이나 사로청원은 거의 다 하지 않는다. 「직맹」이나 「사로청」은 90%가 돈만 내고 조직생활을 안 한다. 다 했다고 위에 보고는 하지만 실제로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거의 관심이 없다.

시집가면 사로청에 있다가 직맹으로 넘어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다.「여맹」은 규율이 좀 세다.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어서 그런지 모이기도 쉽고 회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통제도 딱딱하고 인민반에서 내라는 돈도 잘 낸다.

장00 : 무산군에 김정일 연구실이 있는데 거기서 학습이나 회의를 한다. 연구실에서 회의를 1주에 한 번씩 하는데, 어쩌다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거기에 안 간다고 해서 특별히 규제를 받고 이런 것은 없다. 그리고 다른 지역을 가자면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아는 통계원(노임도 주고, 배급표도 주고, 이동증명서도 떼어 주는 사람)에게 1만~3만원정도 돈을 먹인다. (어떤 통계원은 그걸 자기가 다 먹기도 한다).

통계원은 보통 직장마다 한 명 정도씩 있는데, 직장원들에게는 이동증명서를 공짜로 떼어주기도 한다. 그걸로 외출도 가도 다른 지역에 가고 한다. 식량난이 심하기 전과 후에 통제의 변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 강화된 것은 있겠지만 사람들이 일이 있다고 구실을 대고 못가면 괜찮다. 통계원이 뇌물을 많이 먹게되어 그들한테는 7.1조치가 더 좋았다. 이전에는 증명서 떼는데 5000원이면 되었는데, 지금은 2만~3만원이 들어간다.

최00 : 7.1조치 이후 국경 쪽은 통제가 굉장히 강화되었다. 인민반 생활 같은 조직생활을 안 하면 자기비판을 해야 하는데, 안 해도 별로 문제가 없다. 지금은 강연이나, 생활총화도 참석 안 하는 사람이 많다. 7.1조치 이후 주민생할 통제면에서는 많이 편해졌다. 삼지연군 같은 경우는 사적지 마을이니까 조직생활을 많이 하는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조직에서도 웬만하면 눈감아 준다.

혜산이나 청진지역에는 뇌물만 주면 증명서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청진에 있는 동생이 온성 쪽을 갔는데 경비가 굉장히 심해서 증명서 없이는 못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국경만 벗어나면 다니기가 괜찮다. 국경 통제가 엄해도 돈을 주면 된다.

국경에는 특별경비주간에는 3미터 간격으로 한 명씩 경비대가 보초를 선다. 일반경비주간에는 10리를 4명이 왔다갔다하면서 경비를 선다. 국경 근처를 다닌다면 혹시 중국을 가지 않나 싶어서 단속을 하지만, 그때는 경비대에게 돈을 주면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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